사치스러운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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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2월 29일

내 친구의 묘비



Commented by nevermind at 2006/12/15 11:13 # x
내꺼도 좀, 봐줘봐. (야단은 나중에나중에 치고, 많이 아팠었단말야 나.
기운없으니까 나중에나중에 기운 좀 회복하면 그때. 응?)

宋 智秀
1974년 3월 24일생. 시간은 새벽이라는데 정확하지 않음.
(3시 혹은 4시 부근 혹은, 그 사이)

  이런 아이가 있었다. 내 친구였다. 자기 사주도(알고보니 그냥 난수처리 사기였던 온라인 토정비결 싸이트에) 봐 달라던 저 메세지가 비공개 덧글로 달린 후 보름만에 그 아이는 죽었다.

  우리나라에는 저 아이의 무덤이 없다. 이글루스(가 됐든 온블록이나 다른 블로그가 됐든)에도 이젠 저 아이를 기념할 것이 없다. 괜찮다면 내 블로그에 당신의 묘비를 두시라. 당신의 이름은 나라이름 송, 지혜로울 지, 빼어날 수였다. 1974-2006, 서른 두 해하고 몇 달을 더 이곳에 있었다. 당신은 내 친구였다. 어제 꿈에 찾아와 "회사가 나한테 잠깐 시간을 줘서" 한담해주던 여자가 어쩌면 당신이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나는 오늘 하루종일 꼼짝도 할 수 없었다.





-
오늘 잠깐 짐 정리며 빨래, 하고
내일 오후늦게 다시 나갈꺼야. 어쩌면 빅베어,라는 산으로
어쩌면 샌프란시스코. 어쩌면 또다른 낯선 어디.
북적거리는 연말에 휩쓸리기 싫어서. 그저 고요,하게 지내고 싶어.
 
-
해가 바뀌는 일. 거기 선 하나 그어놓고
넘어가면 2006년, 저쪽은 2007년, 하는 식의 경계란게
정말 그렇게나 커다란 의미가 있기는 있는걸까. 의미가 있니 너에겐?
 

  이런 메일을 보내온 날짜랑 당신이 사망했다고 하는 날짜가 똑같아서 잠깐 오싹하였는데, 생각해 보니 미국하고 여기는 하루의 날짜 차이가 있다. 그렇다면 당신은 정말로 '내일 오후늦게 다시 나갔'다. 언제 돌아올지는 내가 알 수 없다. '그런 게 의미가 있니 너에겐?' 저쪽 세상에서 당신이 내게 웃는다.


  위 내용, 내 임의의 묘비명과 기타 프라이버시에 대해 불만이 있다면 친고죄의 원칙에 따라 당신이 직접 내게 찾아오시라. 다시 꿈속으로 찾아와 당신이 놀러간 빅베어 산의 이야기를 해 준다면 나는 아무 불만없이 이 포스트를 지우겠다. 보고싶고 야속하다. 그래도 당신은 여전히 내 친구다.




 

# by 쁘뉴마 | 2007/12/29 17:39 | 트랙백 | 덧글(14)

2007년 05월 18일

당신은 누구였나요




  냉커피 양이 무척 보고싶어졌는데(다른 일 때문에 메일함을 뒤적이다가 걔가 써준 생일축하 메일이 눈에 띄기도 했고), 또 생각해 보니,
  정말로 냉커피 양을 '보더'라도, 나는 걔를 알아보지 못 하리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나는 냉커피 양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른다. 사진이야 믿을 수 없는 것이고, 직접 얼굴 본 일이 없으니까.


  비단 온라인 인연이 아니더라도, 사별한 사람을 다시 만난다고 할 때 우리는 과연 그 이를 알아볼 수 있을까? 우리는 서로를 실은 아주 조금밖에 알지 못 한다. 더구나 모든 기억이 모호하고 갖가지 업력과 원념만이 남은 희미한 곳에서, 알 수 있을까? 우리가 서로 사랑하였음을, 다시 만날 날을 그래 꿈꿔왔음을. (윤회를 전제할 때, 우리가 '여기서' 서로를 기억하지 못 하는 것을 보자면 '저기서'인들 제대로 기억이 날지 의문이다. 육신을 잃은 내가 육신이 쇠한 치매노인 이상으로 기억력이 좋을 것 같지도 않고)


  우리는 서로를 그리워한다. 하지만 내가 그리워하는 상대방이, 정말 그 사람이 맞을까? 나는 스무 살 때 헤어진 연인을 그리워한다. 그런데 난 사실 나와 만나기 전의 그 사람을 알지 못 하고, (상대적으로 찰나의 만남 후)헤어진 이후의 그 사람을 또한 알지 못 한다. 내가 아는 건 그 사람의 긴긴 삶, 복잡다단한 모습들 중 아주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서로 마음을 섞고 죽도록 그리워한 경우라도 이렇다. 하물며?

  내가 그리워하는 게 그 사람 자체가 아니라 그 사람이 내게 남겨준 상, 기억이라면 그 그리움 자체가 참으로 헛되다. 왜냐면 그 상들은 내 곁에 그 사람이 있든 없든 마찬가지로 내 안에 있는걸. 게다가 그것은 연못에 비친 내 모습에 반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왜곡되고 거짓된 마음일 수 있다. 우리는 늘 거울을 더듬으면서, 상대한테 나 자신의 가면을 씌우면서, 영영 볼 수 없는 대상만을 그리워하는 게 아닐까? 홀로 꿈꾸는 세상에서처럼. 알고보면 스무 살에 만났던 사람을 그리워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을 만났던 내 스무 살 때를 그리워한다든가, 너무나 위선적인 원맨쇼 판토마임(허공을 껴안고, 존재하지 않는 사람을 찾아 허공을 휘젓고).


  간단히 말해서 나는 누군가가 그립다. (그것이 허상이든 위선이든 감정 자체는 부정할 수가 없으니까) 근데 정작 그리워하는 대상이 어떤 사람인지, 아니면 무엇인지, 나는 모른다. 나는 그가 죽도록 그리운데 그 사람이 누군지 모른다. 이 무슨 괴상한 지랄인가.



  '왕의 남자'에 나오는 장님 광대처럼 우리는 눈 감은 채 서로를 찾아 허공을 더듬는다.
  너 거기 있니? 나 여기 있어. 어디??? 여기래메!
  정신없이 더듬지만 서로를 붙들지 못 한다. 누군지도 모를 대상이 왜 보고싶을까, 그리운데 어째서 알 수 없는 것일까.





# by 쁘뉴마 | 2007/05/18 03:56 | 심심하다는 사치 | 트랙백 | 덧글(4)

2007년 05월 18일

서른 두 번째




  "이 동네에선 여자가 여자한테 '안아달라' 한다는 게 너무 어처구니 없는 일에 속해. 여자한테 안기는 건 이상하게 꽉 파묻히는 느낌도 없고. 그래서 주위 머스마들한테 함 안아달라 해 볼까, 생각이 들었어. 근데 애인 있는 애들한테는, 그렇잖아도 '친한 이성친구'란 데에 애인들 시선이 곱지 않던걸. 애인 없는 남자애들이야 이거 잘못해서 상대방이 오해라도 해 버리면 못 할 짓이 되잖아. 나는 무책임하게 안기기만 할 건데, 그러고 싶은데."

  "그래서 말야, 왜 섹스돌이란 거 있잖니. 사람하고 똑같이 생긴 거. 괜히 생각나데. 그냥 딴거없이 꽉...... 근데 그건 만들어진 용도가 너무 너저분하고 음란한 것 같아. 어딘가 안아주기 전문 회사 같은 게 있으면 좋을 텐데. 나처럼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한테 얼마씩 받고, 아무 사심없이 꼬옥 안아주기만 하는 서비스 같은 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2005년, 서른 한 번째 생일날 냉커피 양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냉커피 양한테는 그 다음 생일이 마지막이었다, 다시는 식구들 축하가 부담스러워서 여행으로 도망치거나, 생일케익대신 사심없이 안아줄 친구를 그리워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나, 한 달만 지나면 서른 둘을 먹는다.
  냉커피 양은 볼 수 없었던(보지 않아도 되었던?) 2007년.




# by 쁘뉴마 | 2007/05/18 02:31 | 트랙백 | 덧글(1)

2007년 03월 06일

내 친구들 이야기 (9)




  이 친구의 이야기를 지금 적어둔다는 것이 가당한 일일지 모르겠습니다. 아직도 가슴 속이 뻥 뚫린 양 실감이 나지 않고, 차라리 매사 오버가 심하던 친구의 질 나쁜 장난이었으면 싶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지... 아직까지 납득도 용서도 쉽게 되지 않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여기보다 더 좋은 곳에서 이젠 잘 쉬고 있음에 변함이야 없겠습니다만.
  하지만 가슴 속에 놔둔다고 쉽게 지워지지 않겠지요. 차라리 기억 속에서 미화되기 전에, 간략히만 남겨두고 싶습니다. 지나치게 아프지 않을 정도로만.


 

아파서, 덮습니다

# by 쁘뉴마 | 2007/03/06 02:20 | 내 친구들 이야기 | 트랙백 | 덧글(0)

2007년 03월 04일

그 아이가 죽었다




  이글루에 이상하게 접속이 안 된다는 소릴 하더니 또 소식이 뚝 끊겨서, 전에도 있던 일이었고 또 그러려니 싶어서 약간은 지겹다는 마음으로 잠시 관심을 끊었었다. 마침 내 코가 석자이기도 했고, 기타등등 기타등등... 수많은 핑계들, 그리고.


  그렇게 갔댄다. 열흘쯤 전에 올라온, 친척이 올려준 그 블로그의 마지막 글을 이제야 보았다. 망치 같은 걸 담요로 둘둘 말아(아니면 옛날 소련식 고문법으로 두꺼운 책으로 막은 후 망치로) 머릴 후려친다. 그런 기분으로 서서히, 곤죽이 된 뇌가 구정물 위를 떠다닌다. 어떻게 이렇게 갈 수가 있니, 끝까지 무정하고 대책없는 친구야.


  행간을 보아하니 결국 스스로 끊었나 보다. 어떻게, 나한테는 한 마디 안 하고 그렇게 갈 수가 있어. 원한다면 말리지도 않았을 텐데. 차라리 좋게 보내주었을 텐데. 인사 한 마디 건넬 짬도 안 주고.




  작년 말, 마지막으로 전화가 왔었다. 또 잠을 못 잤다며 바싹 마른 목소리였다. 나는 마침 돌멩이 양이랑 서점에 있었다. 주위는 시끄러워서 저쪽 말을 자꾸 놓쳤고, 돌멩이 양은 뭔 통화를 길거리에서 그래 오래 하냐고 은근슬쩍 타박을 해댔다. 결국에는 뜯어말리듯 전화를 끊어야했다. 알았으니까 우선 자라고, 푹 쉬면서 천천히 생각하라고... 저쪽에선 여전히 끔찍한 불면의 아침을 혼자 견뎌야 한단 걸 알면서도, 우선 내가 편하자고, 골라낸 책값 계산을 해야 했으니까. 그게 만 원이었던가, 만 이천 원이었던가.
  그리고 그게 마지막. 나는 전화도 되걸지 않았다. 새로 산 국제전화카드의 음질이 영 안 나온다는 이유로.


  온블록에서 이글루로 오게 된 것도 알고보면 그 친구 때문이었다. 귀찮은 일 때문에 이글루로 옮겼으니 링크해서 드나들기 쉽도록 이사오라고... 버벅대는 나한테 이글루 사용법을(-이래봤자 별 건 없었지만)가르쳐주었고, 작년 말에는 링크하는 법까지를 마저 일러주었다. 지금도 손닿을 곳에 개켜진 담요는 그 애가 거진 담요값만큼의 운송료를 들여(2년 전, 누추한 데 이사했다는 나를 위해) 보내준 물건이다. 작년 말 또 다른 선물을 보내었다는데 주소지를 잘못 적었던지 도착하지 않았다. 나는 굳이 힘들여 확인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챙겼다면 하다못해 그 애의 마지막 기념물이 되었을 텐데. 알고보면 나는 그 친구의 얼굴도, 주변 이들에 대한 정보도 모른다. 그 애가 정확히 어찌 죽었는지도, 나는 끝내 알지 못 하리라.



  지독한 불면증에 시달리던 그 친구한테, 나는 (대개 여자들한테 작업걸 때 쓰는 멘트 비슷하게) 쁘뉴마의 수면클리닉을 받으면 아무리 못 자는 사람도 지겹도록 퍼질러 자게 된다고 농을 걸었다. 그 애는 힘없이 웃으며 언제 기회가 되면, 미국에 와서 그래 해 달라고 했었다. 나는 올해 초 그 나라에 가게 될 기회가 있었는데 귀찮아서 접었었고, 그렇게 클리닉 기회를 놓친 너는 너무 확실한 처방을 택해 버렸나 보다.

  잘 가기를, 불면의 고통이 없는 곳으로. 하지만 나는 네 불면을 마지막 선물로 넘겨받아 버릴 것 같아. 편해진 이에 대한 정도, 말없이 가버렸다는 서운함은 못 덮겠구나.







p.s)  생전에 그 친구는 한동안 여기에 공개 댓글도 못 달고, 주소 링크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괜찮겠죠. 좋은 관계였든 아니든 그 친구를 아는 사람이 혹시라도 여기까지 드나들게 된다면, 그래 알아주세요. 허나 그곳에 이미 그 친구는 없더군요.

  흔적만 남은, 그 친구의 이글루

 

# by 쁘뉴마 | 2007/03/04 18:38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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